601BISANG

가족시네마 – 가슴 따스해지는 책이 되다 재민이네,『우리는 가족이다』로 멋지게 뭉쳤다

[라벨르] 1999, 04

 

최근 서점에 예쁜 책 한 권이 나왔다. 온 가족이 함께 만들고, 이름도 『우리는 가족이다』(601비상)라고 지은 책이 바로

그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엄마가 하나뿐인 아들이 예닐곱 살 엉뚱하게 반짝이는 나이에 한 말과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심경을 쓰고, 디자이너인 아빠가 책으로 만들었다. 지점토로 가족의 캐릭터 인형도 만들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까르르 맑은 웃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흐뭇하고 예쁜 책. 책장을 넘기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책에 담긴 행복이
사실일까. 책에서만 행복한 것 아닐까. 동화 속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온 듯싶은 아름다움을 가진 삶은 원래 의심받기 쉬운
법이다. 아니, 정확히는 의심이 아니라 질투이다.
기획·서면 기자/글·한지혜(프리랜서)/사진·김유리,홍성돈(프리랜서)

 

개미, 베짱이를 만나다
홍대 시각디자인과 81학번인 박금준 씨는 디자인계에서 제법 알아주는 인물이다.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이름을
물으면, 다들 대답에 앞서 눈이 한 번 반짝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답들에 붙은 수식어는 대단한, 독특한, 기발한, 힘있는,
뭐 대충 그렇다.
“학교 다닐 때부터 튀었어요. 학생 때는 보통 감각적이고 예쁜 것들을 많이 추구하거든요. 그나마 교수님이 시키는 것도
잘 안 하구요. 그런데 이 사람은 그렇지 않더라구요. 교수님이 하라는 것 이상으로 열심히 하기도 하지만, 과제를 내 주면
철저히 마케팅 컨셉에 맞추어서 해 와요. 색을 하나 쓰더라도 컨셉이 있고, 이유가 있었지요. 교수님들이 너무 예뻐해서
배 아파하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
같은 과 84학번 후배인 이정혜 씨 또한 그렇게 배 아파하던 학생들 가운데 하나였다. 10명도 넘는 복학생들 틈에 끼어
우르르 강의실로 들어왔을 때만 해도 박금준 씨는 전혀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다. 우스갯소리도 할 줄 몰랐고, 디자인에
관한 화제가 오르지 않는 이상 목소리를 듣기도 어려울 만큼 조용한 학생이었다. 타고난 성실함과 실력으로 차츰 주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솔직히 멋있는 ‘남자’는 아니었다.
그런 박금준씨와 이정혜 씨가 친해진 것은 잦은 공모전 준비 덕분이다. 예나 지금이나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그룹
과제가 많다. 대개 너더댓 명이 한 조를 이루게 마련인데, 별다른 불화가 없는 한 학기 초에 만들어진 그룹은 졸업할 때까지
한 배를 타게 된다. 이정혜씨는 복학생들과 같은 그룹이 되었다. 그중의 한 명이 박금준씨였다. 일년에도 몇차례씩 공모전
준비를 하느라 밤낮으로 어울려 다니고, 자주 얼굴을 대하다 보니 자연스레 친해졌다. 물론 아주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실은 그룹 초기에 박금준씨는 이정혜 씨에게 딱지를 맞은 적이 있었다.
“복학하고 얼마 있지 않아 불쑥 사귀어 보겠느냐고 하데요. 당연히 싫다고 그랬죠. 키 크고 멋있는 사람과의 연애를 꿈꾸고
있을 나이였거든요. 이 사람 생긴 것도 평범하고 재미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
무엇보다도 이정혜 씨의 부아를 돋운 것은 사귀어 보자가 하던 남자가 은근히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당시
이정혜 씨는 대학가의 유명한 노래 동아리 ‘뚜라미’의 멤버였다. 멤버들과 함께 대학가요제를 준비하던 시절도 있을 만큼
열성회원이었던 그녀의 모습이 박금준 씨에게는 전공을 소홀히 하는 것으로 비쳐졌나보다. 그래도 이정혜 씨 딴에는 박금준 씨가
복학하던 해인 3학년 때가 동아리 활동을 접고 전공공부에 충실을 다하던 무렵이었으니, 한심해 하는 눈길이 억울했던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사실은 동아리 방에서 노래부르는 모습을 보고 끌렸어요. 저는 노래도 못하고, 그런 정서적인 면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참하게 생긴 사람이, 기타를 치면서 빈 동아리 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작업에 대한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면서도 그 모습이 참 예쁘더라구요. ”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가 개미와 베짱이이다. 개미가 열심히 일하는 동안 노래 부르며 놀던 베짱이는 겨울에 개미에게 양식을
구걸해야 했다는 이야기는 사실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개미가 일하는 동안 베짱이는 아름답고 유쾌한 노래로 그들의 노동에
능률을 높여주었으니, 당연히 개미는 베짱이에게 노래에 대한 답례를 하는 것으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박금준 개미도 이정혜 베짱이에게 프로포즈를 하였다고 한다.
모두가 아는 사랑, 모두가 숨겨 준 결혼
박금준씨와 이정혜씨가 맞은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위기는 지역감정이다. 경상도 장인과 전라도 사위가 문제였다. 이정혜 씨의
아버지는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반대를 해왔다. 서울에서 태어난 서울내기인 이정혜 씨에게는 답답하기만 한
아버지의 고집이었다. 같은 학교 같은 과이다 보니 억지로 떼어놓을 수는 없었지만, 박금준씨를 절대 사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늘 다짐했다. 박금준 씨는 이 사태를 술로 해결했다..
“장인 어른이 약주를 좋아하시거든요. 싫다고 하는데도 찾아가서 자주 술을 마시고 그랬지요.” 장인은 꽤 술을 잘하는 어른이라
그렇게 술을 마신날 가운데 절반 이상은 박금준 씨가 먼저 쓰러졌다.
그렇게 퍽퍽 쓰러지면서도 예뻐해 달라고 찾아와 잘하지도 않는 술잔 기울이는 사위가 가상했던 듯 싶다고, 그 노력이 끝내
허락을 받게 해주었다고, 박금준씨는 믿는 눈치이다.
상견례는 졸업식장에서 이루어졌다. 양가에서는 이미 두 사람의 교제 사실을 알고 있었고, 졸업식장에서 만난 가족들은 함께
식사를 하면서 결혼 준비가 착착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이듬해 4월1?,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결혼식을 올렸다. 아니, 거짓말처럼이
아니라 ‘거짓말을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화장품 회사 홍보실에서 근무하던 이정혜 씨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여자 사원들은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거든요. 대졸 사원에 전문직인데도 그랬어요. 회사에는 비밀로
하기 위해 월차를 내고 결혼하러 갔어요. 당연히 청첩장도 못 돌렸지요. 같은 과를 졸업한 동문들만 쉬쉬 알고 있으니까요.”
하필이면 만우절을 택했던 것도 거짓말을 해야하는 상황 때문은 아니었을까. 식만 올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음날 출근을
했다. 당연히 신혼여행은 가지 못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 워낙 커서 다음해 여름휴가로 신혼여행을 미루고도
별로 서운하지는 않았다.
“결혼하고도 처녀 행세하느라 재미있는 일도 많았어요. 숨긴다고 숨겼지만, 그래도 소문이 나게 마련이잖아요. 한데 누가 실은
유부녀라더라는 소문 같은 건 직접 물어보기도 민망하잖아요. 혹시 아니면 이만저만한 실례가 아니니까. 제가 지나가면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요. 전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지나다니고요.”
그럴수록 비밀을 알고 있던 사람들과의 관계는 돈독해지게 마련. 자신이 결혼한 것을 알고 있던 남자동기와는 은밀히(?)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는 바람에 조금 과장하면 사내 스캔들로까지 불거지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다닌 직정이었지만, 만 2년을 채우고는 사표를 썼다. ‘여자=사무원’ 이상의 생각을 못 하는 회사였다.
처음에는 신입사원이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더 늦게 들어온 남자 신입사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너무나 보수적인 회사에 실망한
이정혜씨는 뭔가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저것 공부하면서 처음 만난 것이 종이였다. 당시만 해도
종이 일러스트를 하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뭔가 색다른 일러스트를 해보고 싶던 이정혜씨에게 종이는 매력적인 소재였다.
직장에서 경력을 쌓는 대신 독자적인 영역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박금준씨의 직장생활은 평탄했다. 대기업 홍보실에서 5년, 국내 굴지의 광고회사에서 5년. 학교에서부터 단연 앞서던
그의 디자인은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외국 비엔날레에서 초청을 받기도 하고, 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기도 했다. 디자이너로서만
보았을 때, 그의 생에서 삐걱거린 순간이 있다면, 2년전 모대학 전임으로 초빙되어 회사를 그만두었다가, IMF로 인해 발령이
유보되었던 순간 정도이다. 이 또한 좋은 동료들을 만나 자신의 개성을 충분히 살린 디자인 회사를 창업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이정혜씨가 보는 디자이너로서 박금준은 완벽하다. 그 사람의 디자인도, 디자인에 대해서 보는 눈도 모두 완벽하다. 이정혜씨가 작업을
하다가 마음이 편치 않은 구석은 늘 지적을 해준다. 아내로서는 자랑스럽지만, 동료로서 그의 모습은 질투와 동시에 나는 뭘까 하는
회의감을 줄 정도이다.
박금준씨가 보는 일러스트레이터 이정혜는 독하고, 모험심이 많은 사람이다. 종이 일러스트의 입체감을 한층 살린 것도 그녀가 최초였고,
지점토 인형 특유의 반짝임을 없애는 방법을 찾아낸 것도 그녀였다. 한번 무언가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대학 시절 그녀를
한심하다고 여겼던 박금준 씨의 판단은 잘못이었던 셈이다.
그럼, 아들 재민이가 보는 두 사람의 실력은? 엄마, 아빠 중에 누가 좋아 물었더니 우물쭈물 두 분 다 좋아. 했던 재민이, 누가 더 많이
놀아줘? 해도 우물쭈물 두 분 다, 했던 재민이가 누가 더 그림 잘 그려? 하는 질문에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엄마! 재민이가
볼 때는 엄마 그림이 아빠 그림 보다 훨씬 예쁘다. 원래 아이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엄마 편을 들게 마련이라더니, 재민이에게 승패가
갈림 두 사람의 표정이 어긋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디자인-가족만들기
부부가 사는 집에 온 사람들이 늘 묻는게 잇다. 여기 집 맞아? 디자이너로, 일러스트레이터로 각각 분명한 영역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 집안 인테리어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 바로 작업환경이다. 특히 거의 대부분을 집에서 작업하는 이정혜 씨에게
작업환경은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재민이가 엄마 대신 출근(?)을 한다. 태어나자마자는 외갓집으로, 조금 자라서는 유치원 종일반으로,
지금은 학교로, 안 그래도 바쁘기만 하던 아빠는 지난 연말 사업을 시작한 후로 더 바빠져서 사흘에 한 번이나 집에 오고, 엄마는 집에
같이 있을 뿐 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재민이와 많이 놀아 주지 못한다.
그래도 재민이는 별로 심심해 하지 않는다. 태몽으로 잉어를 보고 낳았다는 재민이는, 꿈값을 하느라고 그런지 평소의 모습이
마치 물 만난 고기 같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정신없을 정도로 부산하거나 말썽을 일으키는 정도는 아니다 앉은 자리에서
숨은 그림 찾기를 몇장씩 슥슥 그리거나, 엄마가 인형을 만드는 지점토를 조금 얻어다가 옆에서 꼬물꼬물 인형을 만들어보거나,
밖에 나가 친구들과 뛰놀기도 잘한다. 그런 재민이가 어느 날 너무 일찍 학교에서 돌아왔다.
“나, 우리 선생님 싫어! 너무 무서워! 매일매일 옐로카드 내밀면서 세 번째니까 집에 가라 그러구…보약먹어라, 그러면서
손바닥 때리구. 뛰지마라, 떠들지 마라, 싸우지 말라…하지 말라는 것만 많구, 하라는 건 ‘조용히 해라’밖에 없어. 엄마, 엄마가 얘기해서
선생님 바꿔 달라구 하면 안돼 ? 예쁜 선생님으로 바꿔 다라면 안 돼?그럼 나, 학교에 매일 1등으로 갈텐데! 선생님 말씀도 1등으로 잘 들을 텐데!”
이런 말을 하는 자식을 보고 속상하지 않을 부모가 있을까. 워낙 감정이 풍부한 성격에, 자기가 느끼는 대로 행동하는 재민이지만,
걸핏하면 산만하다고 주의를 받거나, 아예 수업 중에 집으로 보낼 정도라고는 생각 못했다.
“저는 아빠라서 그런지 학교 교육에도 좀 불만이에요. 애들을 너무 제도 안에 획일화시키는 건 아닌가, 너무 똑같이 교육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 재민이의 산만함을 창의성으로 연결시켜 줄 수 있는 교육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 자식만 옳고 예쁘다는 고슴도치 사랑 같지만, 실제, 재민이를 옆에서 보고 있으면 그런 아빠의 불만에 수긍이 간다. 재민이처럼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정표현이 솔직한, 그리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너무 쉽게 학교 부적응 판단을 받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부부가 재민이의
통통 튀는 대치를 바탕으로 책을 엮어낼 생각을 한 것은 재민이에 대한, 그래도 엄마 아빠는 너의 아름다움을 믿는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생활 곳곳에서 발견하는 재민이의 반짝이는 캐릭터를 소재로 엄마가 인형을 만들고, 다시 그 인형을 소재로 아빠가 달력을 제작했다.
내용은 별 것 없었다. 그저 재민이 애 뽑은 이야기, 새로 우산 산 이야기, 강아지를 갖고 싶어 재민이가 조르고 있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이
한 달에 하나씩 들어 있는 달력이었다. 제작 기간만 6개월이 걸렸다. 그 달력은 흔한 연하장 대신 가까운 분들에게 전해졌다.
“그런데 뜻밖에 팩스며, 편지가 오더라구요. 너무 따뜻하다고, 우리끼리만 보면 아까우니 아예 책으로 만들지 그러느냐구요. 생각지도 못했던
주위의 반응을 보고, 책까지 생각을 해본 거죠.”
달력이 책으로 바뀌는 데에는 1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모습을 담고 싶었기 때문에 재민이가 톡톡 말들을
튀어낼 때 까지 기다려야 하고, 엄마가 인형도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예쁜 그림책 한 권이 만들어졌다. 제목은 『우리는 가족이다』
늘 일에 쫓겨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의 범주에서 잘릴 것 같다고 생각한 아빠가 제안했다. 실은 나도 가족이다, 하고 싶었다 한다.
책이 나오고 가장 좋아한 것은 역시 재민이었다. 재민이는 가족들이 너무 유명해져서 누가 사인해 달라고 할까 봐 걱정이다. 얼마 전에는
아빠에게 사인을 만들어 달라고 졸랐을 정도이다. 가족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내느라 모처럼 사는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던 부부에게도 책은 소중하다
그런데 그들은 책에 있는 것처럼 행복할까?
그림 같다는 말이 있다. 그림 같은 사람, 그림 같은 삶, 그림 같은 이야기…. 대개의 경우 그림 같다는 말은 안정적이고 따뜻하다는 말을
내포하고 있다. 그림 같은 사람이란 여유롭고 아늑한 미소를 가진, 저벅저벅 속도를 늦추어 걸을 줄 아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그림 같은 삶 또한 쉽게 깨어지지 않을 행복한 삶을 연상시킨다. 때문에 그림 같은 사람이란, 혹은 삶이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몹시
편안하게 해주면서,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질투심을 자극하게 마련이다.
박금준, 이정혜 부부의 가족이 주는 느낌도 비슷하다. 능력 있는 젊은 부부, 예쁜 아이, 큰 고비 없이 진행되는 삶 그들의 삶이 정말로
그림책처럼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아마도 그들은 생의 절반쯤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고, 나머지 절반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 산다는 게 어디 똑같은 모습으로 붙박여 있을 수 있나. 삶은 끊임없이 흐르게 마련이고, 흐르는 만큼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정말 책처럼 도란도란 살아요 라는 질문은 우문이다. 그들은 책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고, 덜 행복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