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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보다 더 큰 위로는 없다. 아이와 함께 ‘가족 에세이’ 펴낸 박금준, 이정혜 씨 가정

[아버지와 가정] 1999, 04

 

“재작년 말 이 친구가 연하장이라며 아주 특이한 ‘달력’을 보냈더군요. 친구의 ‘가족 캘린더’를 보면서
그 동안 식구들에게 잘못했던 일들도 반성하고, 가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제게
언제나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자극제’같습니다.” ­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에 사는 김한 씨
재민이네는 모두 세 식구가 산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아빠 박금준씨(37)와 일러스트레이터인 엄마 이정혜 씨(34),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 재민이(8)가 바로 그들이다.
재민이네는 늘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부부가 모두 일 많고 바쁘기로 따지면 누구 못지 않다. 그렇다고 이 부부가
일을 많이 해서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에 빠져 살다보니 정작 돈벌이는 뒷전이고,
오히려 아낌없이(?) 쓰면서 사는 편에 속한다.
디자인 회사 ‘육공일비상’의 대표이며, 대학에서 편집 디자인 강의를 하는 박금준씨. 그의 귀가시간은 거의
새벽녘이다. 그는 일 때문에 신혼여행도 결혼한 지 석 달 후에야 가고, 부인이 출산할 때도 일이 바빠서 가보지 못한
‘불량(?)’한 남편이자 아빠이다.
엄마 이정혜씨도 이에 못지 않다. 출판계에서 꽤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인 그녀는 집이 곧 ‘사무실’이고 ‘작업실’
이다. 집에 있다고는 하지만 일에 매달리다 보니 아들 재민이에게 “계모 아니냐”는 볼멘 소리를 듣곤 한다.
“맨날 바쁘고, 일해서 돈 벌어야 한다고 나랑은 안 놀아주는 엄마, 우리 엄마 맞아요? 엄마, 혹시 계모 아냐?”
그러나 이들은 바쁜 틈틈이 서로에 대한 가족 사랑을 확인한다. 물론 그 역할을 하는 주인공은 재민이. 재민이는
얼굴 보기 힘든 아빠에게 편지도 쓰고 손수 인형을 만들어 책상위에 올려놓는다. 그런 날이면 박씨는 팩스로라도
아들에게 인사를 해둬야 한다. 만약 깜박 챙기지 못해 인형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날이면 삐친 재민이를 달래느라
애먹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가족을 위해 한 일은 ‘매맞은 거’ 가끔씩 재민이가 툭툭 던지는 기상천외한 말들도 이들 부부를 한바탕 웃게 만들고,
때로는 눈물짓게 만드는 생활의 ‘활력소’이다. 재민이네 가족은 얼마 전 공동 작품을 만들었다. 아들 재민이가
주변에서 일어난 갖가지 사건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한 것들을 글로 쓰고, 일러스트레이터인 엄마가 그 이야기를
중심으로 종이 인형으로 만들고, 아빠는 이것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아이와 함께 쓰는 가족 에세이- <우리는 가족이다!> (도서출판 육공일비상). 아들 재민이를 중심으로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재미있고 따뜻한 이야기들을 모아 세 식구가 함께 만든 예쁜 그림책 같은 에세이집이다.
“97년 말 주위 분들에게 연하장 대신 ‘우리 세 식구 잘 있다’는 인사를 전할 색다른 방법을 찾던 끝에 만든 게
‘가족 캘린더’에요. 아이의 글과 아내가 제작한 인형 일러스트를 넣은 달력이었죠. 친지들에게 나눠드리니 ‘너무
재미있다’, ‘마음이 훈훈해졌다’는 격려, 감사 편지들이 많이 오더군요. 그 반응이 너무 뜨거워 올해에는 아예
책으로 내놓았지요.”
<우리는 가족이다!>에는 재민이가 강아지에게 &#51922;겨 울먹이다 엄마의 지원사격을 받고는 강아지 뒤통수에 대고
한바탕 큰 소리 치는 이야기, 엄마에게 생일 선물을 사주겠다며 결국은 자기가 갖고 싶은 로보트를 사버린 이야기,
밥 먹기 싫은 재민이가 ‘IMF이니까 먹는 것도 아껴야 한다’고 핑계 대던 일, 발이 크게 다쳤는데도 엄마가 상처를
보고 놀랄까봐 보지 말라며 오히려 엄마를 달래던 이야기 등 순수하고 감동적인 아이의 생각들이 담겨 있다.
“책을 만들면서 잊고 지냈던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나에게 아내와 아이가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요. 어렵고
힘들 땐 나에게 가족이 있다는 게 정말 큰 힘과 위안을 줍니다.”
“엄마랑 숙제를 같이 했어요. 문제는 ‘화목한 가정을 위해 가족들이 한 일 적어오기.’ 아빠는 대학교 형, 누나들을
가르쳐서 돈을 많이 벌어옵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은 행복해 집니다. 엄마는…그림도 많이 그리고 인형도 만들어서
또 돈을 벌어옵니다. 그러면 또 우리 가정은 행복해 집니다. 재민이가 가정의 화목을 이해 한 일은…(골똘히 생각에
몰입하는 재민) ‘매맞는 거!’ 재민이가 매를 맞으면, 우리 가정은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내 말 맞지, 엄마?”
“우리는 가족이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재민이네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어느덧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