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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족이다! 아들이 주인공, 엄마가 쓰고, 아빠가 펴낸 재민이네 가족

[월간행복] 1999, 04

“엄마, 축구하자!” “축구는 무슨…엄마 그림 그려야 돼.” “엄마 그럼 나도 그림 그릴래~” “재민아 물감 묻는다! 저리 가서 놀아, 응?”
“엄마, 에버랜드 언제 가요?” “에버랜드? 엄마 돈 없어…아빠한테 물어봐” “엄마, 저녁때 짜장면! 아니면 피자! 양념치킨!” “피자구
치킨이구 안돼! 밥 남은 거 있어”
“엄마, 형아들이 축구하는 데 난 안 붙인데…나랑 자전거 타자, 응?” “엄마 일하잖니. 일하는데 너랑 어떻게 놀아?” “치이 엄만 맨날 바쁘고,
돈없다고 하고, 나랑 안 놀아줘. 우리 엄마 맞아? 혹시 계모 아냐?”
한참을 재민이(8)와 실랑이를 하던 엄마는 할 말을 잊었다. ‘…어쩜 내가 그랬구나. 언제나 내 자신이 우선이었구나. 항상 심심하고 항상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우리 재민이는 뒷전이었구나..재민아, 나, 니 친엄마 맞대니?’
이정혜(34) 님은 입이 한주먹이나 나온 재민이를 보면서 그제야 ‘내가 엄마 노릇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민이네 가족은 아빠, 엄마, 이렇게 세 식구다. 하지만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아빠는 늘 바쁘다. 주말에도 안 계실 때가 많다. 엄마도 일러스트레이터다.
물론 집에서 작업을 하실 때가 더 많지만, 집에서 일할 때면 호기심 많은 재민이의 사랑스런 요구가 엄마의 관심을 받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재민이
부모님은 늘 재민이한테 미안한 마음 뿐이다. 하지만 일하다 보면 또 어느새 재민이에게 필요한 건 아이를 관심있게 바라봐 주는 거라는 걸 잊어버리고 만다.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아이뿐만 아니라 주위의 고마운 분들에게도 안부전화 한 통을 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래서 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재민이 아빠가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다. 가족 달력을 만들자! 재민이를 키우며 엄마가 틈틈이 써왔던 일기를 달력으로 만들어 재민이에게도 주고,
주위분들에게도 선물해 ‘저희들 잘 살고 있습니다.’하고 인사드리는데 달력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았다.
이른바 ‘97년 재민이네 가족 달력’. 엄마가 솜씨를 발휘해 만든 종이 인형까지 책 속 그림으로 넣으니, 아기자기한 달력이 만들어졌다. 달력을 하나하나
발송하는 것도 재민이 아빠와 엄마가 했다. 그런데 하고보니,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았다. 어떤 사람은 왜 12월까지 밖에 없냐면서 아쉬워했고,
어떤 분은 “살을 맞대고 있다고 다 가족은 아닐꺼에요. 재민이 가족을 보니, 새삼 가족이 소중하게 느껴지네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한 번 달력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다시 만들어보라며 재민이 부모님에게 아부성(?)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용감해진 부모는 이번엔 달력이 아니라 책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민이네 가족은 ‘재민이 주연, 엄마 글, 아빠 제작’의
<우리는 가족이다!>라는 책을 냈다. 재민이의 천진난만한 성장일기가 엄마의 사랑스런 시선을 통해 책으로 묶여졌다.
“늘 재민이한테 빚진 것 같았어요. 물론 뭐든지 해주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었거든요. 근데 그게 잘 안되더라구요. 이제야 재민이한테 부모 노릇한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각자 자신의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신세대 엄마 아빠 이정혜, 박금준 님(37). 하지만 자식 사랑하는 부모 마음이야 남들과 다를 리 없다.
그리고 이들 부부의 아이 사랑은 이렇게 한 권의 아름다운 가족 동화가 되어 세상에 태어났다.

 

글/ 이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