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 박금준 차장의 작품세계- 질서와 통일이라는 명제에 대하여

 

1984년, 외계인과 소년들과의 아름다운 우정을 그린 휴먼드라마 ‘ET’라는 영화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전세계적으로
‘ET’ 선풍을 불러 일으켰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조스’, ‘인디아나존스’, ‘칼라퍼플’, ‘쥬라기공원’,
‘쉰들러리스트’등을 내놓으며 헐리우드의 흥행메이커로 그 입지를 굳혔던 스필버그. 그는 말한다. “주제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감독으로 남고 싶다. 카멜레온 같은.” 제일기획 SP팀의 아트디렉터인 박금준 차장, 그도 스필버그와 같이 디자인계의
카멜레온으로 남길 꿈꾼다. 누구의 스타일, 누구의 경향이 아닌 완전한 그 작품만의 디자이너이길 희망한다. 때문에 그는
한번 사용한 디자인은 절대 반복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그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중에 자신을 창조한다”고 뒤프렌
(M.Dufrenne)이 말했던가. 그는 한작품, 한작품을 만들어 갈 때 마다 자신을 새롭게 창조해간다. 그런 이유로 그의 작품들은
한자리에 모아 놓아도 마치 각각 다른 사람이 디자인한 듯 공통점을 발견할 수 없으며, 각 작품마다의 독특한 개성이 흐른다.
작품들의 의도된 특성을 살리기 위한 것에서부터 형식파기의 실험성에 이르는 작품까지.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내민 작품들은
자신이 틈틈이 제작했던 개인적인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회사일도 바쁠텐데 언제 이렇게 작업을 했느냐는 질문에, “일년에
3~4개 작품 정도는 꾸준하게 제작하고 있습니다. 후배들에게도 늘 강조하는 것이지만 자신이 시간을 만들지 않으면 결국 개인
사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오히려 바쁜 사람에게 더 너그러운 법이니까요”라고 여유있는 대답을 한다.
다시 태어나도 디자인을 했을 것이라고 할 만큼 디자이너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는 마음대로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을 행복해하고 감사해한다. 홍익대학교 재학시절 그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안타까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2학년으로는 홍대 역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에서 입선을 하면서 불이 붙기 시작한 창작욕은 군입대로 단절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자라면 비껴갈 수 없는 그 길을 그 역시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군복무기간 동안 그가
작품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휴가기간이 전부였었고, 휴가를 나올 때면 한꺼번에 3, 4점씩 몰아서 작업을 한 후 귀대하곤
했었다고 한다.
그때가 젊은 혈기에 타오르는 창작열에 대한 갈증의 해소 기간이였다면 지금은 자신만의 공간으로의 탈출인 동시에 내적인
욕구에 대한 분출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클라이언트라는 제3의 매개체를 통해서가 아닌 순수한 자신의 목소리를 그대로
표출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가 일상의 틀 속에서도 자유로운 사고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감정의 찌꺼기를 거를 수 있는
세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작품들은 그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에이즈 예방, 환경오염, 마약퇴치와 같은
사회운동에 관련된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다른 디자이너들과는 달리 그의 이력에 ‘보건사회부장관 표창 (마약퇴치 예방공로)’
라는 특이한 사항이 추가되어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여기에 또 한가지 이채로운 것은 그의 작품들 중에는 유달리 해외
공모전이나 전시회 등에 출품된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그의 설명이 재미있다. 그것은 기다림… 기다림을 위해서라고
한다. B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A라는 원인이 있어야만 한다. 그는 상을 받는다는 사실 보다는 출품을 한 후 최소
6개월 정도 결과를 기다리면서 느낄 수 있는 설레임, 부지런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즐거운 기다림을 즐기는 것이다. 그는
그 기간동안 자신의 작품이 최고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만일 입선되지 않는다면 그 이유를 분석하고 다시 전진할 수 있는
자극의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그러나 실제로는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출품한 작품 대부분이 입선되었다), “내가 만든
작품이 세계에서 최고일 것이다”라는 이 지독한 오만은 작업 결과에 대한 자만이라기 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통해 주관적인
형상으로 구체화시켜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그가 쏟아부었던 에너지 덩어리에 대한 최후의 자존심일 것이다. 이는 하나의
작품을 세상에 내기까지 그만큼 많이 고민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준비했기에 스스로에게도 부끄럽지 않다라는 당당함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작품의 특징
흔히들 예술과 과학은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과학자나 예술가나 자신들이 사용하는 재료에서 질서를
유출해낸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과학자는 이미 존재하는 질서를 발견하는 수동적인
입장인 반면, 예술가는 재료나 기호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능동적인 입장이라는 것이다. 발견되어지는 자연법칙이 아닌
작가 스스로가 만들어낸 작위적인 규칙이므로 예술가에게는 과학자에게 주어지지 않는 ‘자유’라는 특별한 혜택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때때로 예술가들로 하여금 방종의 선을 넘게 만드는 함정이 되기도 한다. 예술가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질서란 재료들의 전체적 응집과 유기적 통일을 전제로 하는 제한된 자유임에도 이를 종종 망각해 버리는 것이다.
우리 주위의 예술작품들 중에는 작가 스스로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타당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컴퓨터의 침투나 창의적 교육의 부재로 인하여 유행과 모방을 양산해내고 있는 우리 디자인계 역시 이 질서와 응집,
그리고 통일이라는 명제의 대입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본질적으로 예술이 과학보다는 주관적인 면에서 우월하긴
하지만 그것은 일면에 불과한 것이다 예술역시 과학 못지않은 합당한 논리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박금준 차장이 자신의 작품 속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것 또한 바로 이 질서와 응축을 통한 유기적인 통일성이다. 그 짜임새
있는 구성과 차갑도록 절제된 감정, 카피와 타이포를 통해 극대화시킨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며 창출해낸 통일성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전달한다. 그 보이지 않는 역동성은 시선을 끌어당기는 힘으로
연결되면서 미적 호소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물론 그가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한번에 분명하고 명확한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포스터’라는 표현 양식이 그에게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듯하다. 또한 그것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주요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대학졸업 후 쌍용그룹 홍보실에서 5년, 자리를 옮겨 제일기획에 몸담은 지 5년,
이제 그의 이름 앞에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단지 꼭 10년째를 맞는다. 숫자적인 의미는 아니겠지만 내년에는 그동안 자신이
내뱉었던 그래픽 언어들에 대한 결산을 해 볼 계획이란다. 이제는 디자인이 무엇인가를 알 것 같겠다는 질문에 그는 올해
홍익대학교 대학원에 새로 신설된 광고홍보학과에 입학했노라는 대답으로 대신한다. 이 또다른 시작은 앞으로 광고, 마케팅,
PR을 연계한 토탈 프로모션을 하고 싶다는 그에게 있어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매체들에 적합한 새로운 홍보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포석이리라. 급변하는 시대에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그 흐름을 맞춰나갈 줄 아는 진정한 자유인. 부귀와 영화를
등지고 산야에 묻혀 평생을 술과 그림 밖에 모르고 살았던 고 장욱진 화백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그를 보면 어쩔 수 없는
쟁이이구나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장화백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순수하고 맑은 진정한 자유 앞에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글/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