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준, 정종인, 김한. 제일기획 일을 해온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세 명이 ‘601비상’이라는
이름으로 한 곳에 뭉쳤다. 방배동과 여의도, 마포에서 각각 작업실을 운영해온 그들이
이층짜리 단독주택을 전세 얻어 손수 사무실을 꾸민 것이다. 말쑥한 빌딩대신 주택을
개조한 그들의 사무실 자랑을 들어보자.
첫째, 사무실 유지비가 절약된다. 예전에 각각 써온
사무실 관리비를 합치면 월1백만원. 하지만 주택으로 이사하자 전기와 수도요금,
보안장치(SECOM)까지 30만원이면 충분해졌다. 건물 임대료도 예전엔 보증금 1천 7백만원에
월세 2백 50만원이었으나 지금은 전세 6천만원이므로, 1백만원에 2만원씩으로 계산하는
월세 금리로 따져보면 매달 1백 64만원이 저렴해졌다. 따라서 사무실 유지비로만
매달 2백 34만원이 절감된다.
둘째, 근무환경이 훨씬 쾌적하다. 마감일이 정해져 있는 디자인 작업은 야근이 잦다.
예전에 있었던 빌딩은 오후 6시면 여지없이 냉난방이 멈추고, 간혹 밤샘이라도 하려면
꼼짝없이 셔터내린 건물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등 불편이 많았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집처럼 마음 편히 일할 수 있고 간단한 식사나 차, 술 한잔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학교 강의를 맡고 있는 직원의 연구 공간으로서도 그 몫을 훌륭히 해낸다.
셋째, 개성있는 사옥에 대한 직원들의 자부심도 빼놓을 수 없다. 잔디 깔린 마당에는 벤치와
미끄럼틀도 있고 사람을 잘 따르는 달마시안 강아지도 한 마리 키운다. 미끄럼틀은 전 주인이
설치한 것을 치우지 않아 생겼는데, 대문이 늘 열려 있으니 동네 꼬마들이 놀다 가기도 한다.
넷째, 대문 옆 차고를 이용해 멋진 쇼룸도 갖게 되었다. 디자인 작업 외에도 ‘포 폴리오
(4 folio)라는 포트폴리오 백을 개발, 판매하고 있는 그들에게 별채 전시장 겸 매장이
덤으로 생겨났다.
리노베이션 작업은 인테리어 사무실에 맡기는 대신 직원들이 손수 진행했다. 지은 지
20년이나 된 집이라 도면이 남아있지 않았으므로 줄자로 몇 번을 실축해 다시 도면을
그렸다. 예전에 이곳은 4대가 함께 지내온 살림집이었다. 식구수가 많아서인지 좁은
복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들이 나열돼 있는 이른바 ‘여관식 구조’였다. 탁 트인 사무공간을
위해 우선 복도의 칸막이벽 철거에 들어갔다. 낮은 천장을 뜯어 위로 올리고, 벽지를 떼내
드라이비트를 입힌 다음 새로운 구조에 맞춰 전기 배선을 바꾸고, 낡은 욕실도 개조했다.
바닥에 타일을 깔고 칠 작업, 전등매립, 유리창을 끼우고 마당에 잔디와 나무까지 심고나니
공사의 끝이 보였다. 계단 난간과 가구 정비를 끝으로 그들의 보금자리가 완성되었다.
벽과 바닥, 천장까지 손보는 대대적인 공사라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시공비로는 철거 5백
20만원, 미장 3백 20만원, 목재 3백 55만원, 인건비 4백 80만원, 철 2백 75만원, 유리 2백
55만원, 도장 5백 80만원, 전기 5백 50만원, 통신 1백 20만원, 타일 3백 60만원, 설비 2백
80만원, 잡비 3백 40만원, 감리 3백 80만원이 들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비용이 훨씬 많이 든
곳은 전기 공사였다. 그리고 재료비로는 타일 3백 15만원, 페인트 2백 50만원, 조명 1백
35만원, 잔디 1백 50만원, 가구 2백 20만원, 소품 3백만원, 계단의 난간 70만원, 마당 꾸밈이
45만원을 썼다. 공사에 든 총 비용은 6천 3백 30만원이다.
IMF에 웬 인테리어비 지출? 공사 진행과정에서 계획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간 탓도 있었다.
그래서 공사 계획은 예산의 80퍼센트에 맞춰 세우는 것이 좋다. 예상 못한 지출들이 꼭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601비상’식구들의 위와 같은 투자는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결정되었다. 입주 후 월 2백 64만원씩을 전세 계약 기간인 2년간 저금하면 투자비용이
환원된다. 앞에서 짚어봤듯 사무실 유지비만 1백 54만원이 절약되니 가능한 일이다.
또 그래픽디자인, 편집디자인, 멀티미디어라는 다른 분야의 세 디자이너가 한 곳에
모였으므로 예전에 비해 큰 작업을 해내는 시너지 효과도 갖게 되었다. 벌써 의뢰 받는
작업 규모가 달라졌다.
‘601비상’은 사무실만큼이나 이름도 독특하다. 그들이 창업의 음모(?)를 꾸민 날이
6월 1일이고, 또 숫자 커뮤니케이션이 더 잘 기억되므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 곳에서는
팜플렛이나 카탈로그, 프로모션 등 이벤트에 관련된 그래픽 디자인, 그리고 출판 작업을
한다. 이층집을 개조해 아늑한 사무실이 그들의 자유로운 창작을 돕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