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우리는 가족이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부모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사소한 얘기들이 있다. 이 책은 자유분방하고

천진난만한 아이의 생각과 이를 사랑스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을 함께 담고 있어,

실제로는 동화 형식이라기보다 자유로운 에세이 형식을 취한 글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 또는 온 가족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힘들고 지칠 때 편하게 기댈 수 있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존재란 결국, 가족과 가족의 사랑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박금준, 이정혜, 박재민 지음/육공일비상

우리는 가족이다! 아들이 주인공, 엄마가 쓰고, 아빠가 펴낸 재민이네 가족

“엄마, 축구하자!” “축구는 무슨…엄마 그림 그려야 돼.” “엄마 그럼 나도 그림 그릴래~” “재민아 물감 묻는다! 저리 가서 놀아, 응?”
“엄마, 에버랜드 언제 가요?” “에버랜드? 엄마 돈 없어…아빠한테 물어봐” “엄마, 저녁때 짜장면! 아니면 피자! 양념치킨!” “피자구
치킨이구 안돼! 밥 남은 거 있어”
“엄마, 형아들이 축구하는 데 난 안 붙인데…나랑 자전거 타자, 응?” “엄마 일하잖니. 일하는데 너랑 어떻게 놀아?” “치이 엄만 맨날 바쁘고,
돈없다고 하고, 나랑 안 놀아줘. 우리 엄마 맞아? 혹시 계모 아냐?”
한참을 재민이(8)와 실랑이를 하던 엄마는 할 말을 잊었다. ‘…어쩜 내가 그랬구나. 언제나 내 자신이 우선이었구나. 항상 심심하고 항상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우리 재민이는 뒷전이었구나..재민아, 나, 니 친엄마 맞대니?’
이정혜(34) 님은 입이 한주먹이나 나온 재민이를 보면서 그제야 ‘내가 엄마 노릇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민이네 가족은 아빠, 엄마, 이렇게 세 식구다. 하지만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아빠는 늘 바쁘다. 주말에도 안 계실 때가 많다. 엄마도 일러스트레이터다.
물론 집에서 작업을 하실 때가 더 많지만, 집에서 일할 때면 호기심 많은 재민이의 사랑스런 요구가 엄마의 관심을 받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재민이
부모님은 늘 재민이한테 미안한 마음 뿐이다. 하지만 일하다 보면 또 어느새 재민이에게 필요한 건 아이를 관심있게 바라봐 주는 거라는 걸 잊어버리고 만다.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아이뿐만 아니라 주위의 고마운 분들에게도 안부전화 한 통을 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래서 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재민이 아빠가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다. 가족 달력을 만들자! 재민이를 키우며 엄마가 틈틈이 써왔던 일기를 달력으로 만들어 재민이에게도 주고,
주위분들에게도 선물해 ‘저희들 잘 살고 있습니다.’하고 인사드리는데 달력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았다.
이른바 ‘97년 재민이네 가족 달력’. 엄마가 솜씨를 발휘해 만든 종이 인형까지 책 속 그림으로 넣으니, 아기자기한 달력이 만들어졌다. 달력을 하나하나
발송하는 것도 재민이 아빠와 엄마가 했다. 그런데 하고보니,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았다. 어떤 사람은 왜 12월까지 밖에 없냐면서 아쉬워했고,
어떤 분은 “살을 맞대고 있다고 다 가족은 아닐꺼에요. 재민이 가족을 보니, 새삼 가족이 소중하게 느껴지네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한 번 달력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다시 만들어보라며 재민이 부모님에게 아부성(?)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용감해진 부모는 이번엔 달력이 아니라 책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민이네 가족은 ‘재민이 주연, 엄마 글, 아빠 제작’의
<우리는 가족이다!>라는 책을 냈다. 재민이의 천진난만한 성장일기가 엄마의 사랑스런 시선을 통해 책으로 묶여졌다.
“늘 재민이한테 빚진 것 같았어요. 물론 뭐든지 해주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었거든요. 근데 그게 잘 안되더라구요. 이제야 재민이한테 부모 노릇한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각자 자신의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신세대 엄마 아빠 이정혜, 박금준 님(37). 하지만 자식 사랑하는 부모 마음이야 남들과 다를 리 없다.
그리고 이들 부부의 아이 사랑은 이렇게 한 권의 아름다운 가족 동화가 되어 세상에 태어났다.

 

글/ 이현영

 

아이와 함께 쓰는 가족에세이 우리는 가족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무척이나 예쁘다는 생각이 앞섰다.그리고 그리 조급하지 않은 따뜻함을

만날 수 있었다. 아기가 있는 가정을 방문할 때 마땅한 선물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 책을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로부터 시작하여 엄마와 아빠가 함께 써낸 이 책은 일러스트레이터인 엄마가

평소 아이의 얘기와 행동을 소재로 작품을 구성하고 그래픽 디자이너인 아빠가 그 작품들의 옷을 입힌

한편의 가족 에세이. 집 안팎에서 있었던 하나의 사건들을 아이의 시각을 토대로 엄마의 느낌과

서로 비교해 봄으로써 교육적인 측면에서 또한 많은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책의 형식 또한

특이하여, 맞붙어 있는 페이지들을 하나씩 펼쳐가면 숨어있던 엄마의 마음이 열리면서 그 생각이

드러나도록 디자인 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책장을 넘기는 재미 역시 적지 않다.

 
박금준·이정혜·박재민/육공일비상/132면/12,500원

가족보다 더 큰 위로는 없다. 아이와 함께 ‘가족 에세이’ 펴낸 박금준, 이정혜 씨 가정

 

“재작년 말 이 친구가 연하장이라며 아주 특이한 ‘달력’을 보냈더군요. 친구의 ‘가족 캘린더’를 보면서
그 동안 식구들에게 잘못했던 일들도 반성하고, 가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제게
언제나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자극제’같습니다.” ­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에 사는 김한 씨
재민이네는 모두 세 식구가 산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아빠 박금준씨(37)와 일러스트레이터인 엄마 이정혜 씨(34),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 재민이(8)가 바로 그들이다.
재민이네는 늘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부부가 모두 일 많고 바쁘기로 따지면 누구 못지 않다. 그렇다고 이 부부가
일을 많이 해서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에 빠져 살다보니 정작 돈벌이는 뒷전이고,
오히려 아낌없이(?) 쓰면서 사는 편에 속한다.
디자인 회사 ‘육공일비상’의 대표이며, 대학에서 편집 디자인 강의를 하는 박금준씨. 그의 귀가시간은 거의
새벽녘이다. 그는 일 때문에 신혼여행도 결혼한 지 석 달 후에야 가고, 부인이 출산할 때도 일이 바빠서 가보지 못한
‘불량(?)’한 남편이자 아빠이다.
엄마 이정혜씨도 이에 못지 않다. 출판계에서 꽤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인 그녀는 집이 곧 ‘사무실’이고 ‘작업실’
이다. 집에 있다고는 하지만 일에 매달리다 보니 아들 재민이에게 “계모 아니냐”는 볼멘 소리를 듣곤 한다.
“맨날 바쁘고, 일해서 돈 벌어야 한다고 나랑은 안 놀아주는 엄마, 우리 엄마 맞아요? 엄마, 혹시 계모 아냐?”
그러나 이들은 바쁜 틈틈이 서로에 대한 가족 사랑을 확인한다. 물론 그 역할을 하는 주인공은 재민이. 재민이는
얼굴 보기 힘든 아빠에게 편지도 쓰고 손수 인형을 만들어 책상위에 올려놓는다. 그런 날이면 박씨는 팩스로라도
아들에게 인사를 해둬야 한다. 만약 깜박 챙기지 못해 인형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날이면 삐친 재민이를 달래느라
애먹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가족을 위해 한 일은 ‘매맞은 거’ 가끔씩 재민이가 툭툭 던지는 기상천외한 말들도 이들 부부를 한바탕 웃게 만들고,
때로는 눈물짓게 만드는 생활의 ‘활력소’이다. 재민이네 가족은 얼마 전 공동 작품을 만들었다. 아들 재민이가
주변에서 일어난 갖가지 사건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한 것들을 글로 쓰고, 일러스트레이터인 엄마가 그 이야기를
중심으로 종이 인형으로 만들고, 아빠는 이것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아이와 함께 쓰는 가족 에세이- <우리는 가족이다!> (도서출판 육공일비상). 아들 재민이를 중심으로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재미있고 따뜻한 이야기들을 모아 세 식구가 함께 만든 예쁜 그림책 같은 에세이집이다.
“97년 말 주위 분들에게 연하장 대신 ‘우리 세 식구 잘 있다’는 인사를 전할 색다른 방법을 찾던 끝에 만든 게
‘가족 캘린더’에요. 아이의 글과 아내가 제작한 인형 일러스트를 넣은 달력이었죠. 친지들에게 나눠드리니 ‘너무
재미있다’, ‘마음이 훈훈해졌다’는 격려, 감사 편지들이 많이 오더군요. 그 반응이 너무 뜨거워 올해에는 아예
책으로 내놓았지요.”
<우리는 가족이다!>에는 재민이가 강아지에게 &#51922;겨 울먹이다 엄마의 지원사격을 받고는 강아지 뒤통수에 대고
한바탕 큰 소리 치는 이야기, 엄마에게 생일 선물을 사주겠다며 결국은 자기가 갖고 싶은 로보트를 사버린 이야기,
밥 먹기 싫은 재민이가 ‘IMF이니까 먹는 것도 아껴야 한다’고 핑계 대던 일, 발이 크게 다쳤는데도 엄마가 상처를
보고 놀랄까봐 보지 말라며 오히려 엄마를 달래던 이야기 등 순수하고 감동적인 아이의 생각들이 담겨 있다.
“책을 만들면서 잊고 지냈던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나에게 아내와 아이가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요. 어렵고
힘들 땐 나에게 가족이 있다는 게 정말 큰 힘과 위안을 줍니다.”
“엄마랑 숙제를 같이 했어요. 문제는 ‘화목한 가정을 위해 가족들이 한 일 적어오기.’ 아빠는 대학교 형, 누나들을
가르쳐서 돈을 많이 벌어옵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은 행복해 집니다. 엄마는…그림도 많이 그리고 인형도 만들어서
또 돈을 벌어옵니다. 그러면 또 우리 가정은 행복해 집니다. 재민이가 가정의 화목을 이해 한 일은…(골똘히 생각에
몰입하는 재민) ‘매맞는 거!’ 재민이가 매를 맞으면, 우리 가정은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내 말 맞지, 엄마?”
“우리는 가족이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재민이네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어느덧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김지연 기자

가족시네마 – 가슴 따스해지는 책이 되다 재민이네,『우리는 가족이다』로 멋지게 뭉쳤다

 

최근 서점에 예쁜 책 한 권이 나왔다. 온 가족이 함께 만들고, 이름도 『우리는 가족이다』(601비상)라고 지은 책이 바로

그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엄마가 하나뿐인 아들이 예닐곱 살 엉뚱하게 반짝이는 나이에 한 말과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심경을 쓰고, 디자이너인 아빠가 책으로 만들었다. 지점토로 가족의 캐릭터 인형도 만들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까르르 맑은 웃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흐뭇하고 예쁜 책. 책장을 넘기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책에 담긴 행복이
사실일까. 책에서만 행복한 것 아닐까. 동화 속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온 듯싶은 아름다움을 가진 삶은 원래 의심받기 쉬운
법이다. 아니, 정확히는 의심이 아니라 질투이다.
기획·서면 기자/글·한지혜(프리랜서)/사진·김유리,홍성돈(프리랜서)

 

개미, 베짱이를 만나다
홍대 시각디자인과 81학번인 박금준 씨는 디자인계에서 제법 알아주는 인물이다.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이름을
물으면, 다들 대답에 앞서 눈이 한 번 반짝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답들에 붙은 수식어는 대단한, 독특한, 기발한, 힘있는,
뭐 대충 그렇다.
“학교 다닐 때부터 튀었어요. 학생 때는 보통 감각적이고 예쁜 것들을 많이 추구하거든요. 그나마 교수님이 시키는 것도
잘 안 하구요. 그런데 이 사람은 그렇지 않더라구요. 교수님이 하라는 것 이상으로 열심히 하기도 하지만, 과제를 내 주면
철저히 마케팅 컨셉에 맞추어서 해 와요. 색을 하나 쓰더라도 컨셉이 있고, 이유가 있었지요. 교수님들이 너무 예뻐해서
배 아파하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
같은 과 84학번 후배인 이정혜 씨 또한 그렇게 배 아파하던 학생들 가운데 하나였다. 10명도 넘는 복학생들 틈에 끼어
우르르 강의실로 들어왔을 때만 해도 박금준 씨는 전혀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다. 우스갯소리도 할 줄 몰랐고, 디자인에
관한 화제가 오르지 않는 이상 목소리를 듣기도 어려울 만큼 조용한 학생이었다. 타고난 성실함과 실력으로 차츰 주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솔직히 멋있는 ‘남자’는 아니었다.
그런 박금준씨와 이정혜 씨가 친해진 것은 잦은 공모전 준비 덕분이다. 예나 지금이나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그룹
과제가 많다. 대개 너더댓 명이 한 조를 이루게 마련인데, 별다른 불화가 없는 한 학기 초에 만들어진 그룹은 졸업할 때까지
한 배를 타게 된다. 이정혜씨는 복학생들과 같은 그룹이 되었다. 그중의 한 명이 박금준씨였다. 일년에도 몇차례씩 공모전
준비를 하느라 밤낮으로 어울려 다니고, 자주 얼굴을 대하다 보니 자연스레 친해졌다. 물론 아주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실은 그룹 초기에 박금준씨는 이정혜 씨에게 딱지를 맞은 적이 있었다.
“복학하고 얼마 있지 않아 불쑥 사귀어 보겠느냐고 하데요. 당연히 싫다고 그랬죠. 키 크고 멋있는 사람과의 연애를 꿈꾸고
있을 나이였거든요. 이 사람 생긴 것도 평범하고 재미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
무엇보다도 이정혜 씨의 부아를 돋운 것은 사귀어 보자가 하던 남자가 은근히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당시
이정혜 씨는 대학가의 유명한 노래 동아리 ‘뚜라미’의 멤버였다. 멤버들과 함께 대학가요제를 준비하던 시절도 있을 만큼
열성회원이었던 그녀의 모습이 박금준 씨에게는 전공을 소홀히 하는 것으로 비쳐졌나보다. 그래도 이정혜 씨 딴에는 박금준 씨가
복학하던 해인 3학년 때가 동아리 활동을 접고 전공공부에 충실을 다하던 무렵이었으니, 한심해 하는 눈길이 억울했던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사실은 동아리 방에서 노래부르는 모습을 보고 끌렸어요. 저는 노래도 못하고, 그런 정서적인 면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참하게 생긴 사람이, 기타를 치면서 빈 동아리 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작업에 대한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면서도 그 모습이 참 예쁘더라구요. ”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가 개미와 베짱이이다. 개미가 열심히 일하는 동안 노래 부르며 놀던 베짱이는 겨울에 개미에게 양식을
구걸해야 했다는 이야기는 사실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개미가 일하는 동안 베짱이는 아름답고 유쾌한 노래로 그들의 노동에
능률을 높여주었으니, 당연히 개미는 베짱이에게 노래에 대한 답례를 하는 것으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박금준 개미도 이정혜 베짱이에게 프로포즈를 하였다고 한다.
모두가 아는 사랑, 모두가 숨겨 준 결혼
박금준씨와 이정혜씨가 맞은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위기는 지역감정이다. 경상도 장인과 전라도 사위가 문제였다. 이정혜 씨의
아버지는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반대를 해왔다. 서울에서 태어난 서울내기인 이정혜 씨에게는 답답하기만 한
아버지의 고집이었다. 같은 학교 같은 과이다 보니 억지로 떼어놓을 수는 없었지만, 박금준씨를 절대 사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늘 다짐했다. 박금준 씨는 이 사태를 술로 해결했다..
“장인 어른이 약주를 좋아하시거든요. 싫다고 하는데도 찾아가서 자주 술을 마시고 그랬지요.” 장인은 꽤 술을 잘하는 어른이라
그렇게 술을 마신날 가운데 절반 이상은 박금준 씨가 먼저 쓰러졌다.
그렇게 퍽퍽 쓰러지면서도 예뻐해 달라고 찾아와 잘하지도 않는 술잔 기울이는 사위가 가상했던 듯 싶다고, 그 노력이 끝내
허락을 받게 해주었다고, 박금준씨는 믿는 눈치이다.
상견례는 졸업식장에서 이루어졌다. 양가에서는 이미 두 사람의 교제 사실을 알고 있었고, 졸업식장에서 만난 가족들은 함께
식사를 하면서 결혼 준비가 착착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이듬해 4월1?,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결혼식을 올렸다. 아니, 거짓말처럼이
아니라 ‘거짓말을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화장품 회사 홍보실에서 근무하던 이정혜 씨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여자 사원들은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거든요. 대졸 사원에 전문직인데도 그랬어요. 회사에는 비밀로
하기 위해 월차를 내고 결혼하러 갔어요. 당연히 청첩장도 못 돌렸지요. 같은 과를 졸업한 동문들만 쉬쉬 알고 있으니까요.”
하필이면 만우절을 택했던 것도 거짓말을 해야하는 상황 때문은 아니었을까. 식만 올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음날 출근을
했다. 당연히 신혼여행은 가지 못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 워낙 커서 다음해 여름휴가로 신혼여행을 미루고도
별로 서운하지는 않았다.
“결혼하고도 처녀 행세하느라 재미있는 일도 많았어요. 숨긴다고 숨겼지만, 그래도 소문이 나게 마련이잖아요. 한데 누가 실은
유부녀라더라는 소문 같은 건 직접 물어보기도 민망하잖아요. 혹시 아니면 이만저만한 실례가 아니니까. 제가 지나가면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요. 전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지나다니고요.”
그럴수록 비밀을 알고 있던 사람들과의 관계는 돈독해지게 마련. 자신이 결혼한 것을 알고 있던 남자동기와는 은밀히(?)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는 바람에 조금 과장하면 사내 스캔들로까지 불거지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다닌 직정이었지만, 만 2년을 채우고는 사표를 썼다. ‘여자=사무원’ 이상의 생각을 못 하는 회사였다.
처음에는 신입사원이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더 늦게 들어온 남자 신입사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너무나 보수적인 회사에 실망한
이정혜씨는 뭔가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저것 공부하면서 처음 만난 것이 종이였다. 당시만 해도
종이 일러스트를 하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뭔가 색다른 일러스트를 해보고 싶던 이정혜씨에게 종이는 매력적인 소재였다.
직장에서 경력을 쌓는 대신 독자적인 영역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박금준씨의 직장생활은 평탄했다. 대기업 홍보실에서 5년, 국내 굴지의 광고회사에서 5년. 학교에서부터 단연 앞서던
그의 디자인은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외국 비엔날레에서 초청을 받기도 하고, 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기도 했다. 디자이너로서만
보았을 때, 그의 생에서 삐걱거린 순간이 있다면, 2년전 모대학 전임으로 초빙되어 회사를 그만두었다가, IMF로 인해 발령이
유보되었던 순간 정도이다. 이 또한 좋은 동료들을 만나 자신의 개성을 충분히 살린 디자인 회사를 창업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이정혜씨가 보는 디자이너로서 박금준은 완벽하다. 그 사람의 디자인도, 디자인에 대해서 보는 눈도 모두 완벽하다. 이정혜씨가 작업을
하다가 마음이 편치 않은 구석은 늘 지적을 해준다. 아내로서는 자랑스럽지만, 동료로서 그의 모습은 질투와 동시에 나는 뭘까 하는
회의감을 줄 정도이다.
박금준씨가 보는 일러스트레이터 이정혜는 독하고, 모험심이 많은 사람이다. 종이 일러스트의 입체감을 한층 살린 것도 그녀가 최초였고,
지점토 인형 특유의 반짝임을 없애는 방법을 찾아낸 것도 그녀였다. 한번 무언가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대학 시절 그녀를
한심하다고 여겼던 박금준 씨의 판단은 잘못이었던 셈이다.
그럼, 아들 재민이가 보는 두 사람의 실력은? 엄마, 아빠 중에 누가 좋아 물었더니 우물쭈물 두 분 다 좋아. 했던 재민이, 누가 더 많이
놀아줘? 해도 우물쭈물 두 분 다, 했던 재민이가 누가 더 그림 잘 그려? 하는 질문에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엄마! 재민이가
볼 때는 엄마 그림이 아빠 그림 보다 훨씬 예쁘다. 원래 아이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엄마 편을 들게 마련이라더니, 재민이에게 승패가
갈림 두 사람의 표정이 어긋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디자인-가족만들기
부부가 사는 집에 온 사람들이 늘 묻는게 잇다. 여기 집 맞아? 디자이너로, 일러스트레이터로 각각 분명한 영역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 집안 인테리어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 바로 작업환경이다. 특히 거의 대부분을 집에서 작업하는 이정혜 씨에게
작업환경은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재민이가 엄마 대신 출근(?)을 한다. 태어나자마자는 외갓집으로, 조금 자라서는 유치원 종일반으로,
지금은 학교로, 안 그래도 바쁘기만 하던 아빠는 지난 연말 사업을 시작한 후로 더 바빠져서 사흘에 한 번이나 집에 오고, 엄마는 집에
같이 있을 뿐 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재민이와 많이 놀아 주지 못한다.
그래도 재민이는 별로 심심해 하지 않는다. 태몽으로 잉어를 보고 낳았다는 재민이는, 꿈값을 하느라고 그런지 평소의 모습이
마치 물 만난 고기 같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정신없을 정도로 부산하거나 말썽을 일으키는 정도는 아니다 앉은 자리에서
숨은 그림 찾기를 몇장씩 슥슥 그리거나, 엄마가 인형을 만드는 지점토를 조금 얻어다가 옆에서 꼬물꼬물 인형을 만들어보거나,
밖에 나가 친구들과 뛰놀기도 잘한다. 그런 재민이가 어느 날 너무 일찍 학교에서 돌아왔다.
“나, 우리 선생님 싫어! 너무 무서워! 매일매일 옐로카드 내밀면서 세 번째니까 집에 가라 그러구…보약먹어라, 그러면서
손바닥 때리구. 뛰지마라, 떠들지 마라, 싸우지 말라…하지 말라는 것만 많구, 하라는 건 ‘조용히 해라’밖에 없어. 엄마, 엄마가 얘기해서
선생님 바꿔 달라구 하면 안돼 ? 예쁜 선생님으로 바꿔 다라면 안 돼?그럼 나, 학교에 매일 1등으로 갈텐데! 선생님 말씀도 1등으로 잘 들을 텐데!”
이런 말을 하는 자식을 보고 속상하지 않을 부모가 있을까. 워낙 감정이 풍부한 성격에, 자기가 느끼는 대로 행동하는 재민이지만,
걸핏하면 산만하다고 주의를 받거나, 아예 수업 중에 집으로 보낼 정도라고는 생각 못했다.
“저는 아빠라서 그런지 학교 교육에도 좀 불만이에요. 애들을 너무 제도 안에 획일화시키는 건 아닌가, 너무 똑같이 교육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 재민이의 산만함을 창의성으로 연결시켜 줄 수 있는 교육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 자식만 옳고 예쁘다는 고슴도치 사랑 같지만, 실제, 재민이를 옆에서 보고 있으면 그런 아빠의 불만에 수긍이 간다. 재민이처럼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정표현이 솔직한, 그리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너무 쉽게 학교 부적응 판단을 받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부부가 재민이의
통통 튀는 대치를 바탕으로 책을 엮어낼 생각을 한 것은 재민이에 대한, 그래도 엄마 아빠는 너의 아름다움을 믿는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생활 곳곳에서 발견하는 재민이의 반짝이는 캐릭터를 소재로 엄마가 인형을 만들고, 다시 그 인형을 소재로 아빠가 달력을 제작했다.
내용은 별 것 없었다. 그저 재민이 애 뽑은 이야기, 새로 우산 산 이야기, 강아지를 갖고 싶어 재민이가 조르고 있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이
한 달에 하나씩 들어 있는 달력이었다. 제작 기간만 6개월이 걸렸다. 그 달력은 흔한 연하장 대신 가까운 분들에게 전해졌다.
“그런데 뜻밖에 팩스며, 편지가 오더라구요. 너무 따뜻하다고, 우리끼리만 보면 아까우니 아예 책으로 만들지 그러느냐구요. 생각지도 못했던
주위의 반응을 보고, 책까지 생각을 해본 거죠.”
달력이 책으로 바뀌는 데에는 1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모습을 담고 싶었기 때문에 재민이가 톡톡 말들을
튀어낼 때 까지 기다려야 하고, 엄마가 인형도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예쁜 그림책 한 권이 만들어졌다. 제목은 『우리는 가족이다』
늘 일에 쫓겨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의 범주에서 잘릴 것 같다고 생각한 아빠가 제안했다. 실은 나도 가족이다, 하고 싶었다 한다.
책이 나오고 가장 좋아한 것은 역시 재민이었다. 재민이는 가족들이 너무 유명해져서 누가 사인해 달라고 할까 봐 걱정이다. 얼마 전에는
아빠에게 사인을 만들어 달라고 졸랐을 정도이다. 가족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내느라 모처럼 사는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던 부부에게도 책은 소중하다
그런데 그들은 책에 있는 것처럼 행복할까?
그림 같다는 말이 있다. 그림 같은 사람, 그림 같은 삶, 그림 같은 이야기…. 대개의 경우 그림 같다는 말은 안정적이고 따뜻하다는 말을
내포하고 있다. 그림 같은 사람이란 여유롭고 아늑한 미소를 가진, 저벅저벅 속도를 늦추어 걸을 줄 아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그림 같은 삶 또한 쉽게 깨어지지 않을 행복한 삶을 연상시킨다. 때문에 그림 같은 사람이란, 혹은 삶이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몹시
편안하게 해주면서,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질투심을 자극하게 마련이다.
박금준, 이정혜 부부의 가족이 주는 느낌도 비슷하다. 능력 있는 젊은 부부, 예쁜 아이, 큰 고비 없이 진행되는 삶 그들의 삶이 정말로
그림책처럼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아마도 그들은 생의 절반쯤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고, 나머지 절반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 산다는 게 어디 똑같은 모습으로 붙박여 있을 수 있나. 삶은 끊임없이 흐르게 마련이고, 흐르는 만큼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정말 책처럼 도란도란 살아요 라는 질문은 우문이다. 그들은 책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고, 덜 행복해도 괜찮다.

601아트북

 

601비상(대표박금준)에서 디자이너, 판화가, 조각가, 학생 등의 작품 58점을 담은 <601아트북>을 펴냈다.
‘Communication Design(601비상)’이라는 주제로 601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각각 601에 대한 해석과
표현을 다르게 한 이 아트북은 601의 크리에이티브 정신과 재미 요소의 조합, 예술지향적인 이미지 등 기지가
풍부한 아이디어들을 선보이고 있다. 더욱이 학생들의 참여는 상명대 3학년 시각디자인과 (지도교수 박금준)
수업의 결과물로 5주간의 과정을 통해 디자인의 실천적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하였고, 601비상과의 산학협동을
통해 책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601비상의 두 번째 아트북에는 더 많은 학생들의 참여를 계획중이다. <601아트북>은
대형서점과 아트숍에서 판매되며 가격은 12,500원이다.

601아트북

 

601비상(대표박금준)에서 디자이너, 판화가, 조각가, 학생 등의 작품 58점을 담은 <601아트북>을 펴냈다.
‘Communication Design(601비상)’이라는 주제로 601에 대한 해석과 표혀을 각각 다르게 한 이 책은
크리에이티브 정신과 재미요소의 극적 조합, 예술지향적 이미지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보이고 있으며,

각 작품마다 ‘601’의 기호가 들어가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출발하였다.
피라미드의 신비로움과 핵심, 상징 건축을 통한 당당함과 비상, 맛있는 치즈, 팝콘의 구수함, 미끄럼틀의 즐거움,
피카소와 칸딘스키의 패러디를 통한 예술지향적 이미지, 배트맨과의 관계 설정 등 기발한 크리에이티브와
크리에이티브 발상 요소로서의 감각을 보이고 있다.
상명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3학년 학생들이 5주간의 과정을 통해 디자인의 실천적 방법을 찾아보고자, 601비상과
산학협동을 통해 이룬 결과물이다. 601비상은 앞으로도 학생들의 참여와 공모를 통해 두 번째 아트북을 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