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것에의 과잉 애정
[지콜론] 2011본문
주변 것에의 과잉 애정
601비상의 2011년 신묘년 작품집을 선물 받았다. 뒤가 그대로 비치는 한지 위에 601만의그래픽이 침착되어 있다.
740mm(가로), 530mm(세로)라는 비규격 사이즈의 1/3 정도에만 실 제본 – 상단 가로 부분에 -이 되어 있고,
벽에 걸 고리 하나 없다. 어쩜 참 무심하다.
판형으로 보아 벽걸이용으로 생각되는데, 어떻게 걸어놓을까를 생각해 보면 답은 없다.
아마도 튼튼한 액자에 집어넣든가, 실제본의 양 끝 부분을 조심스럽게 벽에 붙여 거는 방법,
혹은 한 장 한 장이 훼손되지 않게 낱장으로 붙여 놓는 방법 정도가 떠오른다.
참 번거롭고 까다로운 작업을 하게 하는 작품집이다. 그러나 고급스러운 고리가 박혀있는 명품브랜드 작품집 보다 더, 더욱 더 벽에 걸고 싶다.
내가 있는 공간에 걸어 놓고 싶다. 나는 그것을 두고, 다소 불편할지라도 사용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기에 아이디어 브랜드,
경험적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집과 경험적 디자인의 연관성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획일함에 불응한 이 불친절한 작품집은 통일성을 찢어버렸고, 급진적인 발상의 기발함으로 만들어진 조각들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브랜드라는 주제 안에서 뽑아낸 ‘경험적 소비와 디자인’을 특집으로 한 2월의 우리는 여느 달과 같이 만지고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들을 주제에 접목시키고
응용시키느라 육체와 정신 모두가 피폐하다. 이제는 커피 카페인으로도 해결 안 되는 지점에까지 다다른 듯 몸에 좋은 생과일 주스가 책상 위에 놓여져 있다.
덕분에 타이레놀 한 통이 바닥났고 관련 서적 이것저것을 뒤적이느라 책상이 비좁다. 교정지가 켜켜이 쌓여 있고 그저께 마시다 만 커피 잔도 그대로다.
수 십 개의 포스트잇, 뭉뚝한 연필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펜, 나의 주변 것들이다.
모니터나 키보드, 마우스 등 컴퓨터를 사용함에 있어 필요한 기계들을 일컬어 주변기기라 부른다.
내가 컴퓨터라는 가설을 세워본다. 그리고 내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을 살펴본다.
아이폰 4는 나에게 가장 많은 시간을 앗아 가기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도 하고
/컴퓨터는 나의 어지러운 생각을 다듬어 정리하게 해주고/종이는 우리의 글과 디자인을 펴내 주고/펜은 떠오르는 구상과
아이디어를 잊지 않게 기록해 주고/책은 부족한 지식과 경험을 대리만족 시켜주어 혜안을 얻게 하고/음식은 나의 육체가 시들지 않게 에너지를 주고/의복은
여린 육체를 감싸주어 자신감을 갖게 하고/ 자동차는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고/동료는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을 주고/가족은
지친 육체와 정신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따뜻함을 준다.
어느 누구는 광상이라 비웃을지라도 주변의 것에서 남겨지는 어떤 흔적, 그 익숙함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내가 가치 있다 여겨지게 하는 애정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것들과의 경험은 매우 즐겁다. 주변의 것을 언어로 묘사하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이상에의 욕망을 채우려는 다분히 의도적인 발상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에 질서가 있다는 것은 지난 역사를 통해 증명되는 부분이다.
사람들의 경험은 개별적이어서 산발적일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어떤 질서를 가지고 움직여진 것이다.
브랜드의 수행의 과정이 있었다면 모를까, 현재 경험적 소비라는 단어가 남발하는 것은 다소 위험해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개별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식별력으로 브랜드의 진정성을 파악해 버린다.
시장과 숫자는 그렇게 솔직하지 않다. 조작될 수도 있고, 이미 조작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움직임은 솔직하다.
마니아가 대중이 되는 현상, 우리는 그것에 주목하고 싶다.
그것이 브랜드의 힘이기에. 3월호에는 경험적 소비의 주체(생산자)라 꼽은 크고 작은 브랜드와의 인터뷰가 진행됐고 실렸다.
브랜드를 꼽은 관점은 오랜 역사나 엄청난 판매고에 있지 않았으며, 다분히 사람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조작되지 않은, 사람의 움직임에 주목한 것이었다.
경험적 소비와 디자인의 연관성에 존재하는 많은 것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언급한 홍석일 교수의 논의를 빌리자면, 이 시대는 늘 디자이너에게 ‘경험적 소비 문화가 될만한
트렌드를 만들어 달라, 보다 더 좋은 퀄리티를 만들어라, 차별화되고 역발상적인 디자인을 내어 놓아라, 사용자 편의에 입각하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인을 뽑아내라’고 요구하지만,
그에 앞서 마련되어야 하는 것은 간과되고 있다. 경험을 디자인할 줄 아는 디자이너를 바라기 이전에, 스티브 잡스와 같은 빈민촌 출신의 노력하는 천재를 인정할 줄 아는,
디자인을 제대로 소비할 줄 아는 성숙한 사회의식과 소비문화라는 토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 사회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디자이너는 원래부터 마땅히 야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그들도 노을지는 아름다운 저녁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픈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콜론> 디자이너, 그리고 에디터분들, 죄송합니다.
NHN 사옥의 환경까지는 장담 못하지만 십 여명이 넘는 디자이너와 기자가 <지콜론>을 만드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라며 오늘도 달립니다.
에어체어는 생각해 볼께요.
편집장 이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