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360°인터뷰
[디자인360°] 2013본문
360°: 제2회 상해 아시아그래픽디자인 비엔날레의 주제는 “발견”입니다.
최근에 선생님께서 관심 있게 보셨던 아시아권의 디자인 현상이나 디자이너가 있으면 공유해 주십시오.
또한, 현재 아시아 그래픽디자인의 발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KP: 디자인적인 관점으로 아시아의 다양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의미있는 접근이다.
아시아의 그래픽디자인이나 디자인 현상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아시아권의 디자인에는 세계화된 보편적 디자인 언어와 아시아다운 다양성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인 한ㆍ중ㆍ일은 눈부신 경제발전과 더불어, 독특한 문화를 선보임으로써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 2011년의 타이포잔치(TYPOJANCHI 2011: Seoul International Typography Biennale)는, 한자문화권에 뿌리를 두면서도
각자 고유의 문자를 통해 동양적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는 동아시아 각국의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고 소통하는 장이 되어 주었다.
서로 다른 글자의 어울림과 독특한 글자 예술을 통해, 동양적 가치의 재발견은 물론 디자인을 매개로 하여 문자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의미 있는 발화점이 된 것이다.
이제 ‘2013타이포잔치’를 준비 중이다. 이곳 서울이 타이포그래피 문화의 중요한 발신지가 될 것이다.
아시아권의 그래픽 디자인에는 각국의 전통적 가치와 문화유산으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또는 서구 교육을 통해 얻은 다양성이 공존한다.
또한 선배 디자이너들과는 확연히 다른 의식과 태도를 지닌 젊은 디자이너들의 약진은 아시아 그래픽디자인의 미래가 될 것이다.
360°: 혹시 상해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지요? 그래픽디자인 비엔날레가 상해에서 열리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한국에서는 광주디자인 비엔날레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이런 디자인 비엔날레가 디자이너와 개최 도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의견 부탁 드립니다.
KP: 중국은 대규모산업화 과정을 거쳐 창의산업의 육성 전략에 힘쓰고 있다. 특히 2008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엑스포, 광저우아시안게임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중국 경제와 산업의 상징 도시인 상하이는 대대적인 창의산업 육성과 디자인의 질적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상하이비엔날레는 디자인산업과 함께 아시아 디자인문화 담론과 소통의 장으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고 하겠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광주의 디자인 산업을 발전시키고 광주가 국제문화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시작되었다.
광주의 지리적,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서, 디자인이 광주시민과 산업, 문화전반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자문하면서 올 해 5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상하이나 광주는 각각 아시아 문화 중심 도시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비엔날레를 통해 지역의 자긍심과 도시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지역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상하이만의 것, 광주가 아니면 안 되는 것. 비엔날레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그 지역의 정체성을 확보할 때 성공적인 가치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공교롭게도 나는 올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엠블럼과 포스터 등 EIP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360°: 동아시아 국가들은 한자나 서예와 같이 문화적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데, 아시아 디자인이 다 함께 탐구하고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KP: 그렇다. 아시아의 디자인은 동일 문화권이라는 생태적 지형 속에 있다. 유럽의 디자인은 매우 기능적이고 과학적이다.
즉 합리성을 중요시하고 aesthetic(미, 조형성)도 그것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아시아의 디자인은(예술이 아니라) 산업화 부문 에서는 유럽의 것을 모방함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예술의 영역으로 보았을 때는 유럽의 예술 작품이 종교와 정치의 도구였다면 아시아는 사상의 도구였다고 여겨진다.
그것이 산업화 이후 기능성을 위주로 한 디자인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고, 유럽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아시아 디자인에 아시아 사상의 뿌리가 서서히 드러날 것이라 기대한다. 과학과 기능도 중요하지만,
자연과의 융화, sustainability(지속가능성), 물질보다는 정신과 경험 등 점점 더 중요시되는 새로운 가치에 기반을 둔 디자인을 사회가 더욱 더 요구하는 현상과 함께 나아갈 것이다.
360°: “발견”이라는 주제로 다시 돌아와, 개인적으로 작업하시면서 발견했던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으신지요? 항상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은 무엇인가요?
KP: 나는 대학에서 강의할 때 ‘디자인은 발견이다’라는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진행해 왔다.
일상 속에서 콘텐츠를 발견하고 익숙 한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는, 컴퓨터를 벗어나서 일상을 바라보고 상상하는 훈련의 하나였다.
학생들은 이 과정을 경험하면서 주변의 공간과 대상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고 나는 지금도 길거리 쓰레기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이 소소한 발견은 나의 생각과 표현을 확장시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나는 한글의 조형성과 회화성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작품을 시도하고 있다.
손때 묻은 낡은 타자기, 어린 시절 함께 했던 벽시계, 폐차장에서 찾아낸 자동차 부품들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등 한글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일련의 작업들은
한글 타이포 그래피의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 이 또한 발견의 연장선상이다.
오픈 마인드.정서적으로 새로운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함, 작업적으로는 고이지 않고 늘 실험을 하는 태도. 디자인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작업 방식에도 고정된 최선이란 없다. 상황에 맞게 나를 비우고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나의 디자인 태도이다.
모티브를 얻는 과정에서부터 단어 하나, 소재 하나, 그것을 끌고 나가는 어조에 이르기까지 마음껏 펼쳐놓고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을 거친다.
여름날의 나뭇가지,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가 이야기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또 상상력을 이끌어 내고 그것을 풀어내는 단계에서는 수차례 방향 수정을 가하기도 한다.
디자인이 수용할 수 있는 스펙트럼의 폭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그것을 고민하는 폭만큼 넓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는 항상 새로운 의견에 귀를 열어두고 있다.
디자인에 호흡이 생겨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은 지난한 작업인 동시에, 그 자체만으로도 소통이 주는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