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디자인회사 601비상에 가다
[레몬트리] 2007, 02본문
편집디자인회사 601비상에 가다
에디터는 우연히 일러스트레이터의 집에 걸려 있던 달력을 보고 ‘601비상’이라는 회사를 알게 되었다.
도톰하면서 수제 느낌이 나는 달력의 디자인이 독특하기도 했지만 마지막 장에 쓰여진 ‘211/601’이라는 표시가 신기했다.
회사 이름에 들어간 숫자대로 6백1개의 달력만 한정 생산해 달력마다 고유 번호를 찍은 것이라고 했다.
새해가 되고 나니 그 재미있는 회사에서 올해는 어떤 달력을 내놓았을지 궁금해졌다.
알고보면 친근한 601비상
에디터 같은 일반인들에게 601비상은 낯선 회사이다.
그러나 1998년 3명이 모여 시작한 601비상은 동종업계에서는알아주는 회사이고 디자인을 전공한 대학생들이 가장 일하고 싶다고 손꼽는 곳이라고 한다.
지난 연말에 혹시 ‘대포’ 나 '산사춘’을 마셨는가. 601비상에서 배상면주가의 CI 리뉴얼 작업을 했고, 삼성전자 보르도 TV 론칭 프로젝트에참여했고,
태평양 설화수, 라네즈 브랜드 북, 디아모레 갤러리 홍보 책자, 2006년 광주비엔날레 열풍변주곡 포스터도 이들에게서 나왔다.
좋은 편집으로 꼽혔던 LG화학의 사외보 ‘공간사랑’이며 삼성생명 종이접기 캘린더, 동양그룹 캘린더 등 그들이 해왔던 작업들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작업들을 떠올려봐도 601비상이 어떤 스타일인지 한마디로 정리할 수가 없다.
청년의 열정과 감성이 담긴 듯한 회사이름처럼 그들의 모토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크리에이티브’이기 때문이다.
불량아빠, 가족 캘린더 만들다
서교동 주택가에 위치한 사옥은 여느 주택보다 멋진 2층 양옥이다. 2층에 위치한 대표의 사무실에 들어가니 삼각
지붕의 오래된 양옥을 모던하면서도 사람 냄새나게 리모델링한 외관처럼 스타일이 있는 가구와 소품과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사십 줄의, 이 회사 23명의 사원 중 가장 나이 많은 박금준 대표는 달변인데다 다정다감하여 에디터는 밥 때가 가는 줄도 모르고 수다에 빠져 있었다.
달력을 만든 사연은 이러하다. 그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후 쌍용그룹 홍보실에서 5년 근무하고 제일기획에서 5년을 일한 후 1998년 6월 1일 3명의 디자이너가 모여 601비상을 열었다.
쌍용그룹 시절에는 연말에 직접 카드도 디자인해 부치곤 했는데 제일기획으로 옮긴 후에는 은사도 지인도 통 못 뵙고,
매년 쓰던 연하장도 못 쓴 지가 오래되어 가족이 잘 있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달력을 만들었다.
달마다 짤막한 가족 이야기를 담은 달력의 제목은 ‘박금준, 이정혜, 박재민, 우리는 가족이다’. 일욕심으로 가족에게 소홀했던 나쁜 아빠가 가족을 억지로라도 묶고 싶어 벌인 일인데
이걸 만들고 좋은 아빠로 오인을 받아 각종 매체와 단체에서 연락이 끊이지 않아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이 가족 달력을 바탕으로 601비상의 첫 번째 아트 북 ‘우리는 가족이다’도 출간하였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엄마가 가족 인형을 만들고, 아이의 눈으로 본 가족을 기록하고, 책장과 책장 사이를 뜯으면 엄마 시각의 글이 적혀 있다.
가족 이야기는 누구네 집에나 있는 빤한 일상이니 아빠는 이 콘텐츠를 매우 불편한 책으로 디자인해 눈길을 끌도록 한 것이다.
형광 오렌지색처럼 눈 아픈 색에, 서점에서 싫어하는 스프링 제본, 뜯어가며 읽어야 하는 책. 601비상에서 출간한 아트 북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책이 되었다.
5년 쓰는 캘린더
박금준 대표는 1년 내내 곁에 두고 보는 달력에 의미를 둔다.
달력은 날짜와 요일을 보는 단순한 숫자표 이상, 뭔가를 전달하는 훌륭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달력에 명화를 담으면 명화를 보급하는 매개체가 되고, 재미있는 그림과 이야기를 담으면 책이 된다.
에디터가 작년인가 우연히 본 달력 이야기를 꺼내니 그 달력은 5년 쓰는 달력이라는 의아한 답을 한다.
5년 쓰는 달력이라니? 2005년에 제작해 그해 12월 초에 거둬들여 2006년 날짜를 넣어 달력을 만들어 다시 배포, 2006년 연말에 걷어서 2007년 날짜를 넣어 다시 배포하는 식.
첫해 2005년 달력의 빈 공간에 2006년 날짜를 반짝거리는 금박.은박 등을 이용해 넣고, 2007년에는 실크 스크린으로 날짜를 넣었다. 내년에는 타공으로 해볼까 생각 중이다.
해당 연도를 사선으로 긋거나 배열을 바꾸고, 글자체 역시 색감도 질감도 달리하고, 그림 위에 인쇄하기도 한 달력은 한 권의 타이포그래피 북 같다.
그리고 사용하는 사람이 적어 넣은 기념일 표시나 메모 등이 남아 있는 채로 다음 해 달력이 만들어진다.
연말에 달력을 거두어 12장을 묶고 있는 스프링을 풀어서 달별로 모아 다시 인쇄를 하기 때문에
맨 뒷장에 고유 번호를 붙였어도 거둔 달력의 열두 달이 서로 섞여서 모르는 사람의 결혼 기념일이 표시된 달력을 쓰게 되기도 한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601비상’. 달력에 그들이 표방하고 있는 소통이라는 모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2백 40일 동안 사옥을 리모델링하다
601비상에 제작한 동양그룹 오리온의 캘린더는 아이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과자 회사임을 생각해 버려진 것들에게 생명력을 주는 콘셉트로 만들었다.
이 달력은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도 실렸을 정도로 유명하다. 모양 맞춰 아무 폐품이나 주워 만든 것이 아니라 바느질 관련
폐품으로 만든 달에는 둥근 모자 모양을 위해 버섯이 아닌 골무를 찾아다 얹는 식으로 완벽을 기했다. 사옥을 리모델링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또한 닮은 면이 있다.
홍대 주차장 골목 쪽에 단독주택을 세 얻어 회사를 시작한 601비상은 몇 년 후 이사를 가야 할 상황이 생겼다.
박금준 대표는 서교동 지도를 복사해 너덜너덜해질 만큼 동네를 돌고 또 돌아 한 달 만에 현재의 2층 단독주택을 찾아냈다.
안전하고 관리도 편리한 빌딩이 아닌 손 많이 가는 단독주택을 고른 이유는 갑갑한 것이 싫어서라고 한다. 같은 이유로 지금껏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다.
이 집을 사옥으로 리모델링하려고 봤더니 꽤 부자가 살았는지 제주도에서 가져온 돌을 붙이고 으리으리했다.
그들이 ‘601비상 스페이스 프로젝트’라고 부르는 이 작업의 중심은 ‘우리만의 감성, 인간미가 배어나는 공간’이었으니 그 아까운 돌들은 뜯어낼 수밖에 없었다.
삼각형 지붕 위에 나무 바를 덧대 사각형 안에 삼각형이 들어가도록 하고(바 사이로 세모 지붕이 비친다),
유난히 단이 높은 마당은 교실을 콘셉트로 하여 초등학생용 걸상을 맞추고 종도 달아 햇볕 마루라고 이름 붙이고, 지하에는 작고 깊은 마당이라 이름 붙인 선큰가든과 갤러리를 두고,
집 위에 유리와 나무 바를 씌우면서 전면과 유리 사이에 틈을 두어 1층부터 2층까지 공기가 통하도록 했다.
건축가에게 맡겨 작업을 했지만 맡겨둔 것이아니라 끊임없이 개입해 601비상 스타일로 만들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들이 제시한 것에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라고 제안하면 “그게 더 좋네요”식의 답변이 몇번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고 손을 걷어붙이게 된 것이다.
애초부터 리모델링 과정을 기록하여 건축가에 선물할 생각이었는데 처음 20페이지로 기획한 것을 만들다 보니 4백 페이지가 넘는 책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에 좋은 건축은 있으되 그 건축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 그를 욕심나게 했다.
2월에 집을 찾기 시작해 3월에 발견하고 4월에 리모델링 디자인을 잡기 시작해 5월에 공사를 시작했다.
6월에 월드컵에 발목 잡혀 공사 속도가 뚝뚝 떨어지고, 7월 장맛비에 또 한풀 꺾이고, 8월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사를 들어온 뒤 공사를 계속해
2백 40일만에 601비상 사옥을 완성했다. 책에는 그 기록과 완성된 공간에 대한 설명을 사진과 함께 담았다.
그는 완벽한 감성주의자이다. 그러니 더불어 601비상도 그들의 작업도 그러할 수밖에 없다.
가족 달력을 만든 감성적인 아빠. 자신의 회사 인테리어 스토리를 꼼꼼히 기록하고 소중히 챙겨 담아두며,
그 기록을 노트로 끝내지 않고 인쇄물로 만들어내는 것이 그가 편집 디자이너라서 당연한 것만은 아니다.
‘601비상 스페이스 프로젝트’라는 책은 패키지부터 세심하다 스티커가 붙어 있는 상자의 정가운데 절취선을 넣어 대문처럼 열도록 패키지를 만들었다.
별걸 다 만들고 신경 썼네, 라고 치부할 사람도 있겠지만 에디터는 그 정성이 감탄스럽다.
마흔이 넘어 사회에서 일하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 스무 살 청년처럼 여전히 열정적이라니.
박금준이라는 사람이 내노라하는 해외 디자인상을 받으며 안팎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