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1아트북’도록에 빼꼼히 숨어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digital brush] 2009, 05본문
601비상 아트북’ 도록에 빼꼼히 숨어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책의 디자인이란 극히 입체적인, 그러므로 3D인 작업이다. 평면에서 시작한 밑그림과 이미지가 한 장
한 장 볼륨을 입는 것은 앞과 뒷장이라는 소통의 입체적인 흐름을 발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1년 여의 시간을 꿰뚫는 프로젝트 전체의 입체적인 기획과 완성까지 고려하면 이 3D 프로젝트는 4D가 된다.
자연히‘D’에는 ‘Depth’ 즉, ‘깊이’라는 의미가 부여됐다.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
601비상에서 해마다 열리는‘601아트북프로젝트’는 다만 아트북을 공모하고, 수상자를 뽑아 상주고,
수상작품들을 모아 전시하고 책 만드는 일련의 생산과정 일 수는 없다. 아니, 생산과정 일 수는 있겠으나
단순히 상과 우승자들을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1년 여의 과정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에 가까운,
601만의‘스토리’생산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 2008년의 경우 601비상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의
테마는‘상상, 호흡, 비상’이었고, 그 이야기는 바로 공모전 포스터였다.
유아용 동화가 아닌 이상, 사실 이야기의 테마는 이야기 속에 스스로를 숨기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프롤로그인 포스터에도 ‘상상, 호흡, 비상’의 테마보다는 울창한 나무가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다.
테마를 맛깔스럽게 엮어낼 이야기 장치인 것인데 ‘왜 하필 나무인가?’라는 질문에 박금준 대표는
“평소 새벽 등산을 하며 틈틈이 나무를 촬영하면서 사람의 조형력으로는 따라 할 수 없는 나무의 아름다움을
아트북에 활용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일상의 등산길에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했던 것이고, 그것이 2008년 601아트북 프로젝트의 태동이었던 것이다. 이야기의 역사는,
그리고 박금준 대표의 끝없는 발품도 사실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처음에는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를 찍고, 아주 드라마틱한 형상을 가진 나무만 찍으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렌즈를 들이대다 보면 드라마가 없는 나무가 없고, 나무를 통해 본 하늘은 전부 시가 되더군요.
보는 각도에 따라 한 나무가 각양각색으로 연출하는 모습들을 보며 우리네 인생사도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푸른색 시와 조형에 매료된 박금준 대표는 더 많은 ‘드라마’를 담기 위해 금강산에서
땅 끝 마을까지 14군데에 발도장을 찍었다.
포스터에서 표지, 표지에서 책 속으로
프롤로그인 포스터는 601비상 아트북 도록의 표지를 통해 이야기의 본문으로 이어진다. 먼저 표지를 살펴보면
29개의 선들과 A(앞면의 경우) 혹은 B(뒷면의 경우)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기자는 처음 이 책이 무슨 카세트
테이프인양 앞면이라서 A, 뒷면이라서 B인줄 알았다. “그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A는 Art A, B는 Book의
B입니다.” 굳이 아트북이란 단어를 분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올해 601에서는 아트북이란 것을 아트(Art)와
북(Book)의 결합이며 그 결합 속에 일어나는 Conversation이라고 정의하고 접근했습니다. 그래서 앞면의 A(Art)와
뒷면의 B(Book)가 서로 하나의 책이란 공간에서 연결이 되어 있는 형태로 구성했으며 책등에 그 둘의 관계를
상징하는 대각선을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29개의 짧은 선들이 궁금하다. “그 29개의 선은 2008년 저희가 뽑은 29명의 수상자들을 의미합니다.
원래는 그들 모두에게 독특한 A와 B를 부여하면서 표지에 29개의 A와 B를 등장시켰는데, 너무 메시지가 우글우글
다 드러나기 때문에 글자 하나와 29개의 흔적만 선 모양으로 남기고 글자들은 숨겼습니다.” 그러면 이 수상자들은
어디로 숨었을까? “바로 표지 뒤에 이어지는 숲속으로 들어갔는데 글자들을 숲속에 숨겨 놓음으로써
‘숲과 문명의 조우’라는 테마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포스터에 등장한 상상, 호흡, 비상의 나무는 아트북 도록의 표지라는 창을 통과하면서 책 앞과 뒤의
육십여 페이지에 달하는 울창한 숲으로 자라간다. 그리고 그 숲속에서 문명의 부산물인 A와 B는 각기 앞과
뒤에서부터 나무 사진 속 상상력 넘치는 배치를 통해 자연의 생명을 얻는다. 때론 귀뚜라미로, 때론 매미로, 때론…
“책의 앞뒤 부분엔 비치는 종이를 사용해 숲의 울창함을 더욱 극대화 시켰습니다.” 그렇게 그 많은 나무
페이지들은 텍스트다운 텍스트 하나 없이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를 소곤거린다. 바람소리 쏴아 훑는 숲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하는 이 페이지로도 이미 아트북이다.
계속 숲속을 걷다 보면 오렌지색 이정표가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책’이 시작됩니다.”라고
설명하는 박금준 대표. 그리고 이어지는 안내문에는 “Art Book is Conversation”이라고 적혀있다. 아트와 북의
만남으로써 아트북, 그 주요 상징인 A와 B는 <_rt>와 <_ook>이라는 타이틀로 다시 한번 강조된다. A와 B를
부재 시킴으로 오히려 그 존재를 더욱 진하게 드러낸 아이디어가 고즈넉한 숲 산책로에 작은 재미가 된다.
그리고 드디어 ‘한 장’이라는 같은 공간에 등장하는 29개의 A와 29개의 B. 기자가 드라마틱한 구성의 정점이
여기라고 느낀 것은 앞장과 뒷장 부터 숲을 건너오는 A와 B가 오작교 대신 바람 부는 숲을 가로지르는 견우와
직녀를 연상시켜서 이고, 표지에 흔적만 남기고 앞질러 숲속으로 잰걸음 옮긴 올해의 수상자들을 드디어
만날 수 있어서다.
숲에 대한 소개-혹은 심사평-글을 읽고 몇 걸음 더 나아가면 수상자의 목록이 등장한다. 책 전체 흐름의 강약을
조절하기 위해 사용된 먹(까만색 처리) 뒤로 비치는 것은 바로 앞으로 곳곳에서 등장할 이현태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
숲을 헤쳐 나오면 다음에 시작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길이다. “나무 사진을 제가 찍었다면 그 후에 시작하는
사진들은 조옥희 씨가 맡았습니다. 숲이 끝나고 길이 시작된다는 의미로 ‘길 위에서’라는 테마를 가지고 촬영을 했는데,
여름에 시작해서 겨울에서야 끝났습니다.” 라는 박 대표의 설명. 수상작들은 길 위에서-그러나 아직 숲이
완전히 끝나 콘크리트로 된 길은 아니다. 그래서 그 길 위에서는 나무가 끝없이 등장한다-여러 기획과 컨셉을
가지고 촬영되었고 이 중 가장 책의 흐름과 잘 어울리는 이미지들이 인쇄되고 제본되었다. 기차여행 이야기를
긴 허리띠 같은 형태로 담아낸 수상자의 작품은 넝쿨 속 뱀처럼 표현되었고, 비정상적으로 키가 큰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기린’은 숲에서 높다란 잎을 따먹고 있는 것처럼 연출되었다. 흑백 페이지에는 유나원 팀장이나 박금준 대표가
직접 색이 강조되는 요소를 더하기도 하고 수상작의 앞뒤 페이지를 겹쳐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재해석 하는 등
601비상 뿐 아니라 수상자에게도 뛰어난 포트폴리오가 되도록 책은 만들어져 갔다.
“혹자는 이런 연출과 디자인 때문에 수상작보다 책이 더 빛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아트북 수상작을
담은 책이 그 자체로 아트북이 되어야 하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수상자에 대한 배려는 시상작의 오리지널리티가
가장 잘 드러나는 디자인과 구성으로써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의 경중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스토리의 흐름만을
최대한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페이지수를 수상자마다 다르게 했습니다.” 그래서 적게는 4페이지, 많게는
16페이지에 걸쳐 각 수상자들의 작품이 등장한다.
수상자들에 대한 배려는 고유한 페이지 수의 ‘할당’이 전부가 아니다. 작품 중간에 등장하는 이현태씨의
‘아이 같은, 순수한’ 일러스트레이션이 들어간 페이지는 601비상이 작가들에게 주는 그 작품의 주인, 수상자들의
‘고유 영역’이다. 일러스트레이션만큼 일단 1센티미터의 크롭이 눈에 띈다. “미싱 선을 넣어, 칼로 자르지 않고
전부 손으로 하나하나 떼도록 만들었습니다. 조금씩 잘못 뜯긴 부분들까지도 전부 디자인 요소로 소화한 것이죠.
이렇게 수상자들의 소개 페이지를 약간 작게 넣은 것은 앞뒤 페이지로 연결되는 책의 흐름 속에 이 소개 페이지가
‘방해자’가 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이 책속에 그들만의 고유한 영역을 표시해
주기 위해서 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수작업 요소 때문에 아직도 도록 전량이 납품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여담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작은 페이지들에도 ‘소통’의 개념이 담뿍 배어 있다.
“일부러 일러스트레이션을 유성 마커 같이 종이 뒤에서도 자국이 남는 것으로 작업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림의 앞면 뿐 아니라 뒷면도 같이 스캔을 해서 그대로 책에서도 앞뒤 페이지로 꾸몄습니다.”
실제 기자는 이 설명을 듣고도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앞에 울창한 숲의 페이지에서 비치는 종이를 사용했듯
여기서도 그냥 종이가 자체적으로 비쳐 보이는 것인 줄로 착각했던 것이다. “또한 모든 수상작에겐 기린,
개미 등 각각의 독특한 캐릭터를 일러스트레이터의 감성으로 부여하도록 했습니다. 프랑스인 수상자에겐
프랑스 국기의 삼색만을 써서 ‘프랑스’같은 느낌이 나도록 했고요.